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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애객(天涯客)/무료분

13장 얼굴을 내밀다(露面)

유피삐 2021. 8. 29. 20:53

주자서는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눈썹을 찡그리며 땅굴 속의 사통팔달한 출입구를 살펴보더니 갑자기 말했다. "이 땅굴에는 흐르는 물과 바람이 이어져 있고, 누군가 먼저 약을 쓸 일이 없었을 거야."

 

그는 약에 정통하다고 감히 말할 수 없지만, 지금의 황제는 일찍이 태자와 경성에서 양성자였던 남강 무동과 친분을 가지고 있었고, 무동은 어렸을 때부터 '무의곡'의 명을 빙자하여 중원의 무림에서 시수를 했을 때 금시초문의 남강의 비약이 적지 않게 그를 통해 나왔다.

 

주자서는 돼지고기를 먹어본 적이 없고, 돼지가 뛰는 모습을 몇 년째 지켜봤지만 이렇게 오랫동안 진실과 거짓을 구별할 수 없는 환각을 일으키는 것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

 

온객행은 이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누군가가 기문 둔갑술로 우릴 이곳에 가둬 놓은 거야—— 넌 그걸 알고 있어?" 

 

주자서가 느긋하고 침착하게 대답했다. "그러니깐, 삼기팔문육갑?"

 

온객행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너는 잡학이 꽤 깊네, 연구도 하고......."

 

주자서는 듣고 계속 침착하게 말했다. "당연히 모르지. '기문둔갑'이라는 이 세 단어만 들어봤을 뿐."

 

그는 걸을 수도 없게 되니 아예 바닥에 주저앉아 등을 벽에 기대었다. 조심하지 않아 상처에 쏠려 표정이 일그러져 숨이 헐떡였다. 자신도 짐승 한 마리에게 이렇게 괴롭힘을 당할 날이 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고 정말 갈수록 고양이는 개를 보고 싶어 하지 않았다.

 

온객행은 자신이 적어도 '삼기팔문'이 무엇을 가리키는 것인지 알고 있다고 생각하며 지적 우월감을 느꼈다. 또한 주자서는 은냥 두 푼에 자신을 팔아넘겼던 기이한 일을 생각하니 이 우월감이 매우 재미가 없었다. 그래서 그 옆에 앉아서 두리번거리며 자신의 어깨에 난 상처를 보며 다소 자신과 상관없는 일인듯 화를 즐기며 말했다.

 

"쓸데없는 일에 참견하고, 물귀신을 끌어안고 계집으로 삼았어."

 

주자서는 눈을 감고 정신을 가다듬으면서 그를 외면했다. 

 

온객행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일어나 잠시 걷다가 다시 돌아왔다. 주자서는 어깨가 차가운 것을 느끼고 눈을 떠보니 온객행은 손에 물먹은 손수건을 들고 어질러진 상처를 닦아주고 있었다.

 

주자서는 의식적으로 옆으로 휙 나갔지만 온객행에 의해 어깨를 눌리게 되었다. "가만히 있어."

 

주자서는 얼굴을 찌푸리며 물었다. "이 물은 어디서?"

 

"강물." 온객행은 생각해보고 덧붙여 말했다. "흐르는 물, 깨끗해."

 

주자서는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는 것을 느꼈고 비록 속으로는 그 물이 흐르는 물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할지라도 상처는 물론, 마시는 것도 괜찮지만 사심 없는 물속에서 태어난 평범하지 않은 생물들을 생각하면 소름이 오싹오싹 돋는다.

 

온객행은 눈치가 빨라서 그가 소름 돋는 것을 보고 기뻐하며 비아냥거렸다. "너 혼자 거지꼴인데 다른 건 더러워? 됐어 약한 척 그만하고 얌전히 있어."

 

주자서는 그의 말이 이치에 맞는다는 것을 알고도 싫어서 그의 손에 들고 있는 손수건을 보았는데, 단지 위에서 코를 찌를 듯한 냄새가 났으며 뿔에는 난초 한 무더기가 수놓아져 있었으며 매우 작지만 정교했다. 말할 수 없는 지분(脂粉)을 가지고 부드러운 분위기를 냈다. 만약에 여자아이가 쓰는 물건이라고 하면 그 손수건은 크기가 너무 크고 무늬도 너무 수수했다. 만약에 남자네 집이라면..... 어떤 사내대장부가 몸에 이런 물건을 가지고 다니지?

 

그는 참지 못하고 온객행을 힐끗 쳐다보았는데, 눈빛이 꽤 이상했고 좌우에 다른 사람은 없자 주자서는 솔직하게 돌아갔다. "이봐 노형. 당신은 왜 여인의 물건을 가지고 다니죠? 무슨 말 못 할 사연이라도 있나 봐?"

 

온객행은 피를 묻은 그의 옷을 천천히 상처에서 벗겨내고 무표정하게 힘을 실어 상처에 묻은 천 조각을 떼어냈고 주자서는 '스윽'하는 소리와 함께 이목구비를 찡그렸다. 그제야 온객행의 마음이 상쾌해졌다. "양저우(扬州) 성의 화괴소월 공자가 직접 선물한 것이니, 물건을 모르면 말을 아끼고 겁을 덜 내도록 해."

扬州 : 장쑤성에 있는 도시 이름

花魁 : 제일 먼저 피는 꽃, 꽃의 여왕

素月 : 백월

 

그리고 그 소월공자가 손수 주신 것을 갈기갈기 찢어서 주자서의 상처에 동여매었다.

 

주자서는 강남의 민풍이 이렇게 개방적인지 몰랐다. 바로 그 30리 망월 강변의 경성, 선제의 그 망할 집안의 황제가 재위하고 가장 사치스러웠을 때도 남자 꽃뱀을 뽑는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어서 머리를 식히고 물었던 것이다.

 

온객행은 매우 동정 어린 시선으로 그를 보고는 되물었다. "너는 도원에서 자란 거야? 천창의 모든 사람들은 촌뜨기인가? 아니면 내가 잘못짚었나?"

 

주자서는 코웃음 치며 말했다.

 

"내가 언제 인정했지....."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온객행은 갑자기 전기처럼 손을 뻗어 그의 가슴에 있는 큰 구멍을 가볍게 찔렀다. 만약 다른 곳에서 발견되었다면 옷을 통해 주자서도 느낄 수 없겠지만, 마침 주자서는 기력이 극도로 약해져서 칠규삼추정이 모두 난동을 부리고 있었는데 이를 아주 가볍게 누르면 그야말로 낙타를 죽인 마지막 짚이 아파와 즉시 헉헉하고 허리를 굽혔다. "너......"

 

온객행은 아래턱을 문지르고 있는 것을 보니, 상당히 깊은 뜻이 있는 것 같았다. "너는 이 내상이 아주 심각한데 지금도 이런 능력이 있으니 천창에서 당신을 가만두지 않을 리가 없어. 그리고 칠규삼추정은 가장 끔찍한 것으로 알려져 있고. 명성 아래서는 실제는 그렇지 못할 거야. 내가 보기에 넌 먹을 수 있고, 마실 수 있고, 달릴 수 있고 정신도 대단하네. 비록 사람이 좀 멍청하지만 그 못에 걸려드는 바보같은 방법도 아닌데 설마 내가 정말 잘못짚은 건 아니겠지?"

 

주자서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아직 이 사이로 몇 글자를 짜내는 것을 잊지 않았다. "온.....객행......나는 □□선조....."

 

그는 더 이상의 내숭을 떨지 않은 것을 보자 온객행은 비록 욕을 먹더라도 왠지 모를 성취감이 저절로 생겨났고 꿈쩍도 하지 않고 말했다. "내 조상은 성이 누구인지 모르고, 이미 작고한 이상 아마 안 될 거야. 네가 만일 역용을 씻고 진면목을 보여줘. 만약 미인이라면 아랫사람으로서 인정받을 수 있어."

 

주자서는 이를 꽉 물고, 허리를 새우처럼 굽히고 아픔을 참으며 내분을 부추겨서 반란을 일으키려는 못을 누르려고 노력했고, 그가 계속 재잘거리는 소리를 듣고, 끝내 참지 못하고 말을 끊었다. "제발 입 좀 다물어!"

 

온객행은 입을 다물고 아무런 죄책감 없이 수수방관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주자서는 눈을 떴고 눈에는 핏발이 서 있었고, 옆사람은 그의 실제 안색이 어떤지 알아볼 수 없지만 보기 흉하다는 것은 알고 말했다.

 

"날이 밝았어."

 

칠규삼추정이 잠잠해지자 밖에 날이 밝았다—— 두 사람이 이 괴이한 땅굴 속에서 하룻밤을 꼬박 갇혀 있었다.

 

온객행은 그와 비교해서 조급해하지 않은 것처럼 말을 듣고 고래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그 사람은 일부러 너를 끌어들인 것 같고, 너를 가둬놓으려고 작정한 것 같아."

 

"너를." 주자서가 말했다. 

 

"분명히 너야." 온객행은 시시콜콜 따지려 들었다.

 

주자서는 그를 상대하기 귀찮아서 그를 거들떠보지 않고, 땅굴의 흙담을 짚고 일어나 그곳에 기대어 어떻게 나갈지 궁리하다가 온객행만 듣고 또 물었다. "주서, 너는 죽음이 무섭지 않아?"

 

주자서가 말했다. "두려워."

 

온객행은 다소 뜻빡의 일로 그를 힐끗 쳐다본 것 같았다. 주자서의 진지한 말만 들었다. "덕을 쌓지 못했는데, 지금 내려가면 염라대왕이 다음 생에 뭘로 태어날지 모르잖아."

 

온객행은 생각해보고 단호히 말했다. "그렇다면 넌 예전에는 분명 좋은 물건이 아니었겠네."

 

그러나 주자서가 대답하기도 전에 그는 이상하게도 매우 진지하게 다시 물었다. "네가 원래부터 좋은 물건이 아니었다면 이제 와서 덕을 쌓고 선을 행하는 것이 효과가 있을까?"

 

주자서는 허리를 곧게 펴고 한 방향으로 걸어가면서 내키는 대로 말했다. "왜 소용이 없어, '칼을 놓으면 즉시 부처가 된다.'라는 말 못 들어봤어?"

 

온객행은 급히 일어나 따라붙더니 입을 열고 말했다. "어디로 가는 거야?"

 

"개고기 먹으러." 주자서는 말했다. "지금 그 사람은 우리를 이곳에 가둬놨을 뿐이야....."

 

"너를." 온객행은 정정하며 말했다.

 

주자서는 눈을 희번덕거리며 계속 말했다. "그 짐승은 키가 작지도 않고 며칠 동안 먹을 수 있을 거야. 또 안되면 강에 있는 것도 있어. 어차피 굶어 죽지 않는데 그 검은 옷이 뭐든 간에 때가 되면 나와서 만나게 될거고."

 

온객행은 대경실색하며 말했다. "너 어제는 강물이 더럽다고 싫어했는데, 오늘은 물속의 껍데기 없는 자라를 먹을 생각이야?!"

대경실색(大惊失色) : 매우 놀라서 얼굴빛이 하얗게 질리는 것.

 

"그래서 당신은 굶어 죽어서 껍데기 없는 놈한테 잡아 먹힐 작정이고?" 주자서는 그를 힐끗 곁눈질하며 결론지었다. "온 형은 정말 성인이네."

 

땅굴에는 빛이 없었는데 다행히 주자서는 원래 심야에 나가려고 해서 몸에 횃불이 몇 개 있었고 작지만 부잣집에서 털어온 작은 야명주도 있었다. 비록 아주 작은 빛밖에 낼 수 없어 두 사람의 눈은 겨우 사물을 볼 수 있었고, 그의 옆모습은 야명주의 희미한 빛에 비췄다. 마침 온객행은 그의 식욕을 자극하는 얼굴과 이목구비를 잘 볼 없었고 곁눈으로 흘겨보며 말할 수 없는 농담으로 음미했다.

 

그의 눈빛은 의외로 꽤 익숙했다.

 

온객행은 한참을 생각했지만 어느 미인의 얼굴에서 이런 눈빛을 봤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 한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

 

두 사람이 침묵을 지켰고 주자서의 귀는 자신과 다른 온객행의 가벼운 호흡을 들으며 소리 없이 웃었다—— 아니나 다를까, 누군가 말을 듣고는 참지 못했다.

 

그리고 그는 강가에 서서 허리를 굽혀 강물에 손을 씻고 기습하려는 괴물의 목을 닥치는 대로 조르고 그것을 바닥에 들어 올렸다. 그 괴물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목이 부러져 죽었고 주자서는 물을 조금씩 떠 천천히 마셨다.

 

온객행은 원래도 쩨쩨하지 않은 홀아비였는데, 무슨 생각에 잠긴 듯 그를 쳐다보았다. 괴물의 시체를 발끝으로 끌어올려 한쪽으로 차고 그의 모습을 흉내내면서 강물을 몇 모금 마셔 목을 축였다.

 

이때, 등 뒤에서 한 줄기의 강한 바람이 불어오자 온객행은 일찍 예상했던 것처럼 당황하지 않고 비켜섰지만 발을 헛디뎌서 칼 한 자루가 그의 옷자락을 스치며 물에 빠졌다. '쿵'하는 소리와 함께 주자서는 크게 웃었고 손을 세워 한쪽에 서서 구경을 했다. "이봐, 온형. 내가 너한테 온 거라고 했지? 건드린 사람이 이렇게 애를 써서 널 죽이려고 하다니, 당신도 분명 좋은 물건은 아닐 거야."

 

땅굴 구석구석에는 모두 칼이 발사되었는데 그 칼들은 주자서를 잠시 무시하고 그대로 온객행을 향해 갔고 그대로 칼바람과 칼비가 교차되었다. 온객행은 낭패스럽지 않았는데, 그의 경공은 주자서가 상상한 것보다 더 뛰어났다.

 

그저 속으로만 욕을 퍼붓었다—— 주 씨 성을 가진 이 남자는 한마디 말에도 복수를 했고 단지 좋은 물건이 아닐뿐더러, 그는 정말 물건도 아니었다.

 

온객행은 손을 들어 칼을 날렸고 그 칼날은 주자서의 바짓가랑이 바닥에 박혀서 말했다.

 

"죽음을 보고도 도와주지 않은 주미인, 넌 이렇게 덕을 쌓고 선을 행하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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